옐로우캣

[그것이 알고싶다] 구의동 고등학생 피살사건

 

112신고센터에 걸려온 전화 한 통.

괴로운 신음 소리와 함께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이어지다가 전화는 끊겼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때 쓰러진 사람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고 합니다.


교복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엎드린 채 숨을 거둔 학생의 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고
마지막 발신내역이 112였던 겁니다.


사망한 학생은 근처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7살 한인택 군.

 

 

누군가 흉기로 인택군의 복부를 한 차례 찔렀고, 한 번의 공격이 사망에 이를만큼 치명적이었던 겁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복부를 이 정도로 찔렀다는 건 반드시 살인의 의지가 있었다고 보는게 의학적으로는 합리적일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대동맥이 찔려서 출혈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그래서 아마도 사망에 이르는 속도가 빨랐다는 겁니다.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고등학생이 칼에 찔려 숨진채 발견되자 경찰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군이 흉기에 찔려 숨진 곳은 파출소에서 불과 1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인데요,
경찰은 40여 명의 형사를 수사본부에 긴급투입하게 됩니다.

대규모 수사인력을 투입한지 닷새만에 같은 학교 학생 두 명이 용의자로 긴급체포됩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인택군이 사망하기 직전 112에 남긴 신고 음성.
경찰은 신고당시 들렸던 음성과 일치하는 이름을 피해자 학생의 고등학교에서 찾아내는데요,


그는 바로 인택군의 동창이자 사건 당시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김군이었습니다.

故 인택군의 친구는 원한이 있는 같은 학교 학생이 동선을 알아내서 기다렸다가 흉기로 찔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는데, 신고 음성 외에 경찰이 김 군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게 된 건, 사건 당일 인택군이 사망한 현장 근처에서 김 군을 본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격자가 본 두 명이 바로 김 군과 그의 친구 정 군.
긴급체포 된 두 사람은 경찰조사에서 자신들이 그 날 인택군을 쫓아갔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대질시킨 결과, 인택군을 찌른건 김 군임이 밝혀지면서 정 군은 풀려났습니다.
당시 알려진 범행동기는 학교폭력이었습니다.

학교 폭력이 원인이 되어 벌어진 10대들의 참극
사건은 그렇게 막이 내리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ㅡ

사건발생후 1년이 다 될 무렵, 인택군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김 군이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현장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흉기인 칼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엔 김군과 관련된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고 김군과 정군이 했던 자백역시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동급생간의 살인으로 알려졌다가 다시 1년만에 경찰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사건으로 마무리 된 구의동 고등학생 살인사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제작진은 이 세 사람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 물었습니다.
그들은 김 군과 정 군이 복수를 하려고 인택군을 쫓아갔다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김군과 정군의 중학교 동창은 그들이 까불까불하긴 했지만 사람을 칼로 지를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망한 인택군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만큼 원한을 살 친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건을 마치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복수극 처럼 묘사한 언론보도에 화가나 항의전화까지 했었다는 친구들


그 동안 몇 번이고 용기를 내 의문을 풀어보려 했던 고 한인택 군의 어머니

하지만..


오늘도 결국 판결문의 첫 장도 넘기지 못합니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는 아들의 마지막이 적힌 기록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 그 아이가 범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는 어머니.
특히 인택군이 마지막으로 녹취, 112에 신고했던 음성을 정말 꼭 판독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로 밤을 새워 작업하는 만큼 섬뜩한 느낌이 들어 결코 쉽지 않았던 작업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인택군의 신음소리와 신고를 받은 경찰의 말소리는 모양이 달랐는데 김군의 이름이라 주장한 부분은 말 보다는 신음소리와 모양이 비슷합니다.


불명확한 발성으로 나와 있는 112진술 그 신고 내용만 가지고 정확하게 네가 범인이라고 지목했던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확증 편향적 또는 사전 편향적인 수사라는 이야기라는 것.


경찰수사에서 또 다른 의문은 칼입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는 김 군의 지문 혹은 혈흔이 없었는데 경찰은 왜 김군을 범인이라고 확증했을까?


만져도 지문이 나오지 않는 재질이라는 겁니다. 경찰주장대로 재질에 따라 지문이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었던 경찰이 집중했던 것이 바로 목격자의 진술이었습니다.

그 날 인택군을 쫓아간 사람이 김 군과 정 군이라고 주장한 윤씨.
하지만 윤씨는 김군과 정군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한 번만 보고 정확히 기억하는게 가능할까.

 

제작진은 윤 씨의 목격담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도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건 당시 목격자 윤 씨에게 김 군과 정 군을 보여주고 용의자인지 아닌지 물은건 사건이 발생한지 4일째 되던 날입니다. 제작진은 4일후에 목격자를 맡았던 두 명의 실험자를 만났습니다. 첫번째 실험자는 한 명만 맞췄고, 두번째 실험자는 모두 틀렸습니다.

 

 

윤씨가 이들보다 기억력이 좋았던걸까?
그는 어떻게 4일 후 김군을 보자마자 그 날 본 사람이 맞다고 확신했던 걸까?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경찰이 윤씨에게 수갑을 찬 김 군 한 명 만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유죄 판결 난 것으로 입증된 사례중의 86~90%가 대부분 목격 진술의 오류 때문에
그 범인으로 잘못 지목된다고 합니다.

다양한 검증 결과, 경찰이 김군을 범인으로 확신한 이유를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군이 범인으로 몰린건 자백때문인데,

 

김군은 왜 범행을 자백했던 걸까?


30대 초반이 되어있을 김 군을 과연 제작진이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제작진과의 만남에서 사건 당일날 밤에 한인택군을 만난적이 없었다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책 대여점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동행한 김 군의 친구에게도 김 군의 알리바이에 대한 진술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범행을 의심하며 자백하라고 협박했다는 겁니다.


결국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서를 쓰고 부모님을 만난 후에야 용기를 얻어 범행을 부인했다는 김군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볼때, 범인을 짐작케하는 단서는 두 가지
인택군이 사망직전 112에 한 신고와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입니다. 두 가지를 놓고 봤을 때 범인은 면식범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김 군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보다 더 적극적으로 목격자를 찾아나섰던 김 군의 가족


결국 윤 씨외에 다른 목격자를 찾지 못한 탓에 유일하게 남은 단서는 칼 밖에 없습니다.
당시 경찰은 김군에게 청계천 노점에서 칼을 샀다는 진술을 받았습니다.


과연 청계천 노점에서 살 수 있었던 칼일까?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 이런 칼을 들고 다닐만한 이들은 없었던 걸까?
탐문 도중 제작진은 당시 이 지역에서 칼을 소유했던 범죄조직을 알고있다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 칼을 가지고 다녔다는 두 명의 리더가 목격자 윤씨가 그 날 봤다는 두 명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그 지역에서 칼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한다는 얘기는 못들어봤다는 겁니다.

 

판결문을 살펴본 법조인들은 경찰과 검찰이 자백과 목격자 진술로만 범인으로 판단한 것이 아쉽다는 입장입니다.

김 군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인택군을 범인은 사라졌고 지난 15년간 누구도 그 죽움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재수사의 가능성은 없는 걸까.


자료를 검토하던 전문가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 당시의 증거물, 현장 증거물 자체를 다시 분석하는게 핵심이라는 겁니다.

당시 수사기관은 칼의 손잡이에서 지문과 혈흔을 검사했지만 DNA 검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는 지문을 하면 그 다음에 DNA는 안 하는 것으로 많이 생각했던 시기이고,
DNA 감식 기술이 그러한 접촉 증거물에서는 잘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행도구가 지금 제대로 보관이 되고 있다면 DNA검출을 해볼 수 있다는 것. 칼과 칼집에 범인의 DNA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취재 후 고 인택군의 어머니를 만난 제작진은 故 인택군의 어머니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어머니는 15년간 김 군이 범인이라고 믿었던 만큼 취재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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