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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발전한데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들 한다. 매년 한 번은 국민들의 독서량을 통계로 낼 때 언제나 일본사람들의 독서량과 우리나라의 성인 1명당 독서량이 비교되곤 한다. 일본 성인들은 적어도 1주일에 책 한 권은 읽는다고 하는데 그만큼 일본 출판시장의 규모는 매우 큰 편이다. 미국/영국처럼 문고판이 많고 해외도서의 번역활동도 매우 왕성하다고 한다.

 

 나는 얼마전 지식욕에 의해 일본 문고판 책을 몇 권 사게 되었다. 이와나미 문고의 책들이다. 이와나미 문고는 창간한지 100년 가까이 되가는 일본의 첫 문고판 출판사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이 고전을 쉽게 읽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고판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그 작은 판형의 아담함과 그로 인한 편안한 독서라고 하겠다. 이러한 문고판의 장점 때문에 일본사람들은 지하철에서도 손쉽게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서 책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읽고 싶은 책을 읽을텐데, 일본 문고판에는 그만큼 사람들이 읽을만한 책들이 많다는 말이 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고판의 발행부수는 한 나라의 지식에의 추구 및 갈망의 수준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책을 자주 읽고 싶으면 문고판이라는 형식의 책이 나왔을까?

 비단 일본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의 주요 선진국 사람들은 실제로 틈만 나면 일상적으로 문고판 서적을 꺼내어 길에서든 지하철에서든 읽는다고들 한다.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일상에서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일본 도서의 내용의 깊이

 

아무튼 이번에 구입한 일본 문고판 책들 가운데서도 <말과 국가>라는 책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첫 페이지 한 문단을 읽은 느낌은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이와 같이 깊이 있으면서도 정갈하게 만든 도서를 본 적이 없다"는 느낌.  일본 책이 이렇게 깊이 있게 된데는 아마도 한국과는 사상과 학문의 깊이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독서를 많이 하는 국가이고, 도서를 많이 출간하기도 하는 국가이다. 사실상 지식과 학문의 체계가 바로 잡혀있는 세계의 손꼽히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지식의 선진국이라는 것은 그들이 받은 노벨상 개수만 놓고 보더라도 금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신문물은 그 밑바탕에 과학이 있다. 서양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노벨상을 휩쓰는 데는 이러한 역사가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과학은 철학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데, ㅡ 철학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것 ㅡ 한 국가가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바로 철학이 그 밑바탕에 놓여있어야 하는 것이다. 철학(哲學)은 끊임없는 생각과 지식에의 추구에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체계 잡힌 사상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탄탄한 철학의 토대에서 나올 수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일본이 서양의 흐름에 발맞추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데는 탄탄한 일본인의 철학이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자세가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이다.

 

 

인간은 보통 누구나 말을 한다. 이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기본적 표식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요컨대 동

물분류학상 인간의 위치는 호모 로퀜스("언어적" 인간)라는

부분에 존재한다. 실제로 육체적으로 나타난 행동으로 보면

혀, 입술, 목청처럼 특정 부분을 사용해 음을 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서로 이해되고 있을까. 이런 문제에 이르면 그런

모든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이라고 부르는 데는 약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기보다 지금 여기서 언급한 방식으로 우선

'사람'이라는 동물의 종류에 공통적인 "말"이라는 것을 미리 만들어놓은 후

이야기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역사적 순서로 보자면 그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각각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알 수 없는 음들의 연속(덩어리)

을 발했지만, 그것 역시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실은 언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 다나카 가쓰히코의 <말과 국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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