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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복절 특사> 소개

 

감독 : 김상진

주요 배우 : 설경구, 차승원, 송윤아

 

 

줄거리

 

 가진거라곤 건강한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최무석. 그러던 어느날, 사고를 당해 유일한 재산이나 다름없던 몸마저 못쓰게 되면서 백수가 됐다. 하루는 길을 걷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가게에서 파는 빵을 마음대로 훔쳐먹었다 경찰에 체포되어 1년 2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답답한 감옥생활을 1분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계속해서 탈옥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러는 사이 형량은 점점 늘어나 8년형이 됐다.

 

 할 줄 아는거라곤 사기치는일이 전부인 유재필. 옥생활을 하는사이 연인 경순이 짭새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를 듣고 완전히 뚜껑이 열린 그는 마침 무석이 숟가락으로 파놓은 구덩이를 통해 함께 탈옥을 하게된다. 간신히 감옥을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하는 두 사람. 그런데 신문을 보던 두 사람은 기막힌 사실을 알아낸다. 바로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자신들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그간 준비해둔 탈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지만 경순과 짭새가 이대로 결혼하는걸 볼수없었던 재필은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주요 배우 소개

 

설경구

 

대한민국의 배우.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마포구청에 전근을 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에서 성장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2000년대 충무로를 대표한 연기파 트로이카로 엄청난 파워와 에너지를 가진 배우이다. 막연히 연출가가 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재수 끝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몰래 입학 원서를 냈고, 감독을 잘 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우연찮게 연기를 시작해 이문식, 유오성, 전수경 등 동문들이 주축이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동참하면서 1993년작 연극 《심바새메》로 데뷔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서까지 같은 사람들, 교수님과 함께 하다보니 대학 5학년 같은 느낌이 싫어 극단을 나왔다. 참고로 대학 시절에 KBS 공채 탤런트에 응시해 3차까지 합격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젊은 연극제 공연작의 연출을 맡아 달라는 교수들의 성화에 시험을 포기했다.

극단을 나온 후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중 극단 학전에 있던 대학 선배에 부탁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하도 열심히 붙인 나머지, 김민기의 눈에 띄게 되면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 되었다. 설경구는 1994년 초연 때부터 1996년까지 80여 가지 역할 가운데 두 역을 제외한 모든 역할을 해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1년에는 공연 1,000회를 기념한 독일 베를린 무대에 섰다.

 

영화에 입문한 초기에는 《꽃잎》, 《러브 스토리》,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등의 영화에 단역으로 모습을 비추었지만 본격적으로 주연급의 자리에 오른 것은 2000년작인 《박하사탕》이다. 물론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은 아니다. 《박하사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박종원 감독의 《송어》라는 작품이 첫 주연작이나 상업 영화 치고 저예산 작품에 설경구가 원톱 주연이 아닌 데다가 촬영 기간도 로케이션이 90%이상 한 동네라 <박하사탕>에 비해 길지 않은 편이었고 예술 영화에 가까운 상업 영화였다.

이미 한 차례 <박하사탕> 오디션에서 탈락 되었지만 이창동 감독 부인이 우연히 거실에서 본 오디션 필름에서 설경구를 보고 "김영호 여기 있네"라며 설경구를 추천한 것이 인연으로 캐스팅 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설경구는 《해피엔드》에서 주진모가 연기한 전도연의 내연남으로 캐스팅 된 상태였다.《박하사탕》에서 40대에서부터 20대로 거슬러 올라가 점점 순수함을 잃고 타락해가는 남자 김영호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설경구는 "1999년 한국 영화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그해 1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극중 등장하는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다.

 

 

2002년 《공공의 적》에서 꼴통 경찰 강철중 역으로 열연하며 본격적인 스타가 된다. 실감나는 연기와 대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오아시스》에서는 지적 능력이 덜 발달한 전과 3범의 홍종두역을 맡아서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광복절 특사》로 개그 장르에도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2002년은 설경구의 해라고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무려 10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오죽하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시상식에서 죄송하다고 할 정도로 3년여 동안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강인찬 역을 맡은 2003년작 《실미도》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로소 설경구를 본격적인 "흥행 배우"로 자리잡게끔 만들어줬다. "비겁한 변명입니다!"는 실미도 최고의 명대사/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일합작 《역도산》을 촬영할 당시 체중을 30kg 정도 늘리고, 레슬링 기술을 수련 했으며, 바로 다음 영화를 위해서 감량하는 등 연기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극중 전체 대사의 98%를 차지하는 일본어 대사 탓에 더빙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자기 목소리로 연기하지 않는 배우는 연기자가 아니다"라는 일념으로 스스로 5개월간 독학을 하며 완벽히 대사를 소화해 낸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다만 《실미도》로 정점을 찍은 후론 점점 흥행에 고배를 마시게 되고 관객들은 점점 그의 작품 선택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거 마치 흥행 보증 수표라 불렸지만 조용히 내려앉은 한석규를 떠올리게도 했기에 많은 팬들이 불안해했다.

그러나 2009년에 개봉하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에서, 술에 취해 사직구장의 펜스에 매달려 이대호에게 눈을 부라리며 꼴리건 흉내를 내는 등 명연기를 해내며 다시금 흥행 배우로 등극한다. 2010년 <해결사>, 2012년 《타워》, 2013년 《감시자들》과 《소원》, 《스파이》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흥행 배우 자리를 다시금 공고히 했다.

 

차승원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원래 80년대말 패션 모델로 데뷔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남자 모델계의 레전드로 활약했으며 90년대 말부터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쇼프로에도 빈번히 출연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재미있는 입담을 선보여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게된다. 모델 출신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 하나.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의 단역부터. 다만 이듬해까지는 영화계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98년에도 영화 출연작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조연이 전부. 그래도 방송 쪽에서는 상황이 달랐는데, 캐스팅이 영화 쪽보단 덜 까다로웠기 때문. 데뷔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이런저런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조연을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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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엉뚱하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였으니... 그게 바로 토크쇼. 1998년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에 보조MC로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김혜수의 플러스유까지 계속해서 연속해서 대박이 터졌던 것. 여기서 차승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본인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토크쇼의 맹활약 덕분에 연기자로서도 지위가 상승, 98년 후반기부터 99년까지 각종 TV 드라마, 시트콤 등지에서 주연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쪽에서도 99년 <자귀모>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의 인식은 그냥 얼굴만 잘생긴 예능인 + TV배우 정도에 불과. 인기를 얻었다지만 필모그래피 자체도 얼굴만 강조하는 뻔하디 뻔한 TV 멜로드라마였을 뿐이었다. TV 쪽보다 까다로운 영화계에서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였던 상황. 이 당시 차승원에 대해 발연기 운운하는 얘기도 있었으나, 엄밀히 말해 그냥 99년 후반기 이전의 차승원은 연기력 자체를 보여줄 무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냥 잘생기고 예능감 있는 TV 연기자 내지 방송인 정도로 커리어가 흘러갔을 터인데... 1999년 연말 개봉한 《세기말》에서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에서 차승원이 자신에게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연기력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 당시 전문적인 평자들이 이 영화를 논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부분이 "차승원에게 저런 연기력이 있었는 줄 몰랐다"는 얘기. 덕분에 영화계에서 차승원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한 미남배우가 아니라 흥행력과 연기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로 인정받게 된 것. 이렇게 되어 이듬해인 2000년 작품인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연말 개봉한 당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리베라 메》에서도 최민수, 유지태와 동급으로 지위가 상승했다. 특히 《리베라 메》의 경우,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차승원을 처음 각인시킨 첫 작품이다. 《세기말》은 흥행에서 폭망했던 터라(...) 대중들에게 차승원의 연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으니...

어쨌든 이런 차승원의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 모델출신으로 연기자나 얼굴로 주목받은 배우들은 부지기수이지만, 차승원처럼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연기력까지 인정 받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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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충무로 특급 흥행카드가 되었다. 2003년 보디가드로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근 십 년 동안 이런저런 흥행작들의 타이틀롤로 출연하였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가 차승원의 제1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로, 강우석감독이 운영하는 '시네마 서비스'에서 제작한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등의 코미디 영화가 연속 대박 행진을 기록했다.

 

 

 

이후 2005년 《혈의 누》에 출연하며 코미디 연기 편향에서 벗어나 필모그래피가 다양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2000년대 중반 이후 마땅한 흥행작이나 대표작이 없다는 게 다소 아쉬운 편. 폭망까지는 아니고 여전히 수요가 있는 배우이긴 하지만 말이다. 본인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 커리어에 다소 위기감을 느꼈는지 2009년부터 꾸준히 TV드라마 작품을 하고 있다. 이중 가장 히트작은 2011년 작 《최고의 사랑》이며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연기는 각종 예능프로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다. 그런 한편으로 아테나:전쟁의 여신이나 화정같은 망작도 있긴 하다. 드라마 쪽으로는 약간 부침이 있긴 해도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반면, 영화 쪽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 중에 평가나 흥행 어느 한쪽이라도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 없다시피 하다. 어쩌면 영화 시나리오 선구안이 좀 부족한게 아닌가 싶다.

송윤아

 

대한민국의 배우.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 금상을 수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무명시절을 길게 겪은 사람에 비할 것은 아니나 데뷔 초 3년 정도 무명시절이 있었다. 이 시절엔 소속사도 없고 코디는 당연히 없어 의상은 어머니가 준비해 주었다고. 데뷔 초기 공채 탤런트 시절에는 적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기 벅차 데뷔하고도 1년 넘게 중학생들에게 수학, 영어를 가르치는 과외를 했었다.

 

각종 영화 및 드라마에서 조연 혹은 단역으로 연기력을 익혔고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1997년 방영된 '전설의 고향-구미호'편이다. 그 연기 잘한다는 사람들 모아놓은 용의 눈물에도 이숙번 부인으로 캐스팅 되어 최명길, 선동혁 등의 연기자들과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송윤아가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작품은 1998년 방송된 드라마 미스터Q이다. 여기에서 김희선을 괴롭히는 직장상사 황주리 역할로 사랑과 미움을 한몸에 받았고, 역대 드라마 속 최고의 악역이라는 평가와 함께 주연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김희선과는 절친 사이가 된다. 이후 드라마 애드버킷, 종이학, 왕초, 나쁜 친구들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고, 호텔리어는 극 중 신동혁 역 (배용준)과의 커플을 추진한다는 의미에서 "동진추"라는 팬덤까지 생겼다. 이후에 반달곰 내사랑, 영화 《불후의 명작》에 출연하여 다소곳하고 지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 한동안 남성들에게 '최고의 신부감'이었고, 시부모님들에게는 '최고의 며느리감' 0순위였다.

이병훈 PD의 끊임없는 캐스팅 제의를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애드버킷에서 당찬 검사 장혜미 연기를 선보인 송윤아에 매력을 느껴 허준, 상도, 대장금의 여주인공으로 당초 송윤아의 캐스팅을 1순위로 원했다고 알려졌다.

 

 

아울러,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왕과 비, 장희빈, 왕의 여자 같은 사극 캐스팅 제의가 있었으나 모두 고사했다. 특히, 《왕의 여자》 뿐 아니라 여인천하 캐스팅 제의도 왔으나 모두 고사했는데 송윤아 외에도 채림, 채시라 등이 거론되었으나 채림은 송윤아가 그랬던 것처럼 사극이란 이유로, 채시라는 출산 준비 때문에 거절하였다.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푼수끼 있는 연기를 하며 이미지 변신을 하였고, 청룡영화상, 대종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송윤아가 다소곳하고 지적인 이미지 뿐만 아니라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는 푼수 역할까지 폭을 넓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강애리자의 곡을 리메이크해 극중 송윤아가 부른 곡 분홍 립스틱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는 MBC 대한민국 영화대상 진행을 맡아 평소 지적이고 단정한 이미지와 더불어 차분하고 탁월한 진행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특히 여러 해 사회자로 나서면서 매년 하나씩 특별한 축하 무대를 준비하는 등 공을 들이며 국내 영화시상식에 '호스트'의 개념을 보여준 사례.

 

하지만 배우로서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 누나와 영화 페이스, 사랑을 놓치다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8년 드라마 온에어에서 자존심 강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거물 스타 작가 서영은 역할을 연기했는데 초반엔 오버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오버스러움까지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후반부에는 그런 성격의 역할 자체에 정말 완벽한 연기를 선보여, 대중들에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극중 박용하와 잘 어울려 드라마가 끝나고 열애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서로 기사를 보며 애써 부인하지 않고 웃어 넘겼다는 여담이 있다. 그 해 2008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2009년 5월 설경구와 결혼 후에 첫 작품인 시크릿웨딩드레스에 출연했다. 시크릿에서는 형사 차승원의 아내로 살인 용의자로 추정되어 남편을 혼란에 빠트리는 역할, 웨딩드레스에서는 홀로 딸을 키우며 살다 위암 선고를 받고 죽어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역할. 이후 코리아 갓 탤런트 시즌1에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연기 활동을 쉬면서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다.

 

 

 

2014년 드라마 마마로 6년 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해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옛 남자의 아내와 우정을 나누는 싱글맘 한승희 역할로 호평을 받았다. 마마는 송윤아 인생작이라 평할 수 있을 정도이고 망해가던 MBC 10시 시간대 주말드라마의 시청률을 20%까지 끌어 올리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다소 신파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소재였지만 대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완벽한 몇 안 되는 희대의 명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2014 MBC 연기대상 대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으나 그 해의 연민정 몰이가 너무 컸기에 아쉽게도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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