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캣

감독 : 박찬욱

주요 배우 : 이병헌, 송강호, 신하균, 이영애

지금 돌아보면,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송강호와 이병헌이 같이 출연하는 영화가 앞으로 나올지도 의문이네요. 그럼, 내용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내용 소개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 병장(이병헌)은 북한군 중사 오경필과 전사 정우진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집니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친해지고 이수혁 병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이병장의 초소와 오경필이 근무하던 초소는 시멘트로 된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에 조용히 넘어갔다 오면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고, 나중에는 이 병장의 후임인 남성식도 그에 합류해서 남한 군인 두명과 북한 군인 두명은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초소 감시차 들른 북한군 군인에게 들키게 됩니다.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그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됩니다. 그리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북한 초소에서 총성이 울리게 되고 북한 초소병 정우진이 그 상황에서 죽고, 그 옆에 중사 오경필도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군사분계선 한가운데서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수혁 병장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의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이영애)이 파견됩니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들을 차례차례 만나는데...

 

감독 및 배우 소개

 

박찬욱

1963년 8월 23일생. 영동고등학교,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큰아버지가 변호사협회장, 아버지가 대학 교수를 지낼 정도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른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으나, 처음 두 편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하여 한동안 영화평론가로 머물렀다. 이에 상당한 달필로도 유명한 편이며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 정성일은 박찬욱 감독이 평론을 계속 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한편 스크린을 비롯한 영화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 당시 《펄프 픽션》을 홍보하러 내한한 쿠엔틴 타란니노와 인터뷰를 가지고 그것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 두 사람이 2004년 칸 영화제에서 다시 만났을 때, 박찬욱 감독이 그 때의 인연을 논하자 타란티노는 "아, 그 때 그 사람이 당신이었느냐"라는 식으로 반가워했다고 한다.

 

1992년 이승철을 주연으로 한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했다. 영화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이후 5년 동안 영화 연출을 할 수 없었고 그 기간 동안 영화사에 취직해 일하기도 했고 잡지 등에 평론가로 기고활동을 했다. 두 번째 작품은 《3인조》. 대중에게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지만, 이상의 작품에서 드러난 남다른 개성으로 인해 일부 영화광에게 지지를 받았다. 1999년에 《심판》이라는 단편을 만들었으며, 이 작품을 기반으로 이어서 2000년에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한다. 이 작품이 흥행과 비평적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2002년 자신의 취향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복수는 나의 것》을 발표했다. 평론가들의 호평과 일부 관객의 열광적 지지가 이어졌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자신의 색깔과 대중성을 적절히 배합하여 2003년에 내놓은 《올드보이》로 비평과 흥행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올드보이》는 특히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박찬욱과 한국영화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2005년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으며, 소품격인 2006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2009년 《박쥐》로 다시 한번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병헌

1990년대 하이틴 스타로 인기 가도를 달리며 드라마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영화에 출연했지만 죄다 말아먹고 영화가 안 맞는 거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까지 얻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까지의 필모그래피는 거의 흑역사 수준.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내 마음의 풍금》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평가도 좋지 못했다. 김성수 감독이 야심차게 만든 액션 스릴러 《런어웨이》조차 쫄딱 망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선 성공하지만 영화는 말아먹는 배우라고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영화가 실패해도 캐스팅 0순위인 이유가 '공짜로 출연해야 할 레벨'이라서 그런 거라는 풍문이 떠돌기도 할 정도로... 그래서 영화계에서 최초의 히트작인 것에 감격해서 극장에서 혼자 몰래 수도 없이 JSA를 보았다고 한다. 풍문에 의하면 시간만 나면 영화관에 가서 봤다고 할 정도(백번 가까이 봤다고...이병헌의 영화사랑을 알수있는 대목.) 박찬욱 감독과는 이 작품 이후로 쭉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필두로 하여 영화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더니 드라마 《올인》 이후부터는 한 동안 완전히 영화 배우로 전직(?). 달콤한 인생에서는 한층 원숙해진 연기력으로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갈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2009년 《G.I.Joe - The Rise of Cobra》에 악당 닌자 스톰 쉐도우로 출연해 열연을 펼쳐 주며 성공적으로 헐리우드 데뷔를 했다. 왠지 주인공보다 더 포스 있다. 지 아이 조 제작 중 스톰 쉐도우의 국적을 한국인으로 변경하길 제안한 요청이 받아진 걸 보면 상당히 감독 마음에 들었던 듯.

할리우드에서 등장하는 무술하는 동양인 남성이 감정 표현이 거의 없고 대사가 적으며 어느 한 집단의 병풍 A라는 법칙을 깨뜨린 인물되겠다. 각종 인터뷰들을 보면 이 영화를 찍으며 시에나 밀러와도 꽤 친분이 생긴 듯하다. 해외 시사회 영상들을 보면 둘이 가볍게 장난치는 장면들도 더러 볼 수 있다.

2010년,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하였다. 제 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열연으로 영화 부문 대상을 차지했으며 시상식장에서 "키도 별로 크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큰 상(大賞)을 주고" 라며 키드립을 쳐서 화제를 모았다.

2012년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주역 광해군 역과 광해군으로 가장하는 인물인 주인공 하선 1인 2역을 맡았다. 이게 추석 시즌 관객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대열에 합류했다. 평론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영화의 인기에 대한 거품 논란이 있기도 했으나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거의 칭찬 일색의 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박근형 같은 원로배우도 김승우의 승승장구 출연 당시 연기력을 인정하는 후배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광해》를 보고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 감탄했다고 칭찬을 했을 정도이다.

 

송강호

1991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데뷔작은 《동승》. 이 당시 송강호에게 영향을 끼친 배우가 김윤석이라고 한다. 그 뒤로 연극과 단편영화에 출연하다 연우무대 선배였던 김의성에 의해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충무로, 즉 상업영화에 처음 데뷔했다. 서민이나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 역할을 많이 한 그이지만, 의외로 데뷔작에서는 돈 좀 번 껄렁껄렁한 속물인 주인공 동창 역할로 나왔다. 그러나 역시 송강호라서인지 잠깐의 등장에서도 뛰어난 아우라를 보여준다. 참고로 이때 장선우의 괴작 《나쁜 영화》에서도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그러나 사실상 두 영화 모두 대사가 있는 엑스트라 수준의 비중인지라 보통 실질적 데뷔작은 다음 작품 초록 물고기를 꼽는다.

이후 이창동의 《초록물고기》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야비한 깡패 판수 역을 연기하면서 신 스틸러로 주목을 받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연기가 얼마나 리얼했는지 당시 관객들이 "어디서 진짜로 깡패를 섭외해서 찍은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문성근이나 명계남 한석규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연기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송강호였다는 평이 많다.

이후 송능한 감독은 이 《초록물고기》에서의 송강호의 연기를 인상깊게 보아서 자신의 영화 《넘버3》에 송강호를 캐스팅하게 된다. 《넘버 3》에서 불사파 보스 조필 역을 맡았는데, 무대뽀 정신과 헝그리 정신으로 대표되는 장면에서 그가 늘어놓은 일장 연설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해 최고의 유행어가 된다. 영화의 등급은 19금이었지만 웬만한 중고딩들이 다 따라했을 정도... 이 작품을 통해 송강호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러나 송강호의 이미지가 한동안 코믹하게 고착되어 버렸다는 점에서 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어 김지운의 《조용한 가족》, 강제규의 《쉬리》를 통해 조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원래 송강호는 《쉬리》에 캐스팅된 것이 아니였다. 영화 제작진은 차인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차인표가 거절해서 그 대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이후 송강호는 《반칙왕》으로 첫 주연을 맡게 되었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 역할로 진중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마침내 '송강호=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된다. 뒤이어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등을 거쳐, 드디어 2006년 《괴물》로 천만배우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신하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졸업 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98년 장진 감독의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했다. 신인이면서 첫 영화부터 주연 중 한명으로 등장.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병사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기대주로 성장했다. 당시 신하균이 연기한 정우진 전사는 원래 더 어린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이었다고. 그러나 박찬욱 감독이 신하균을 직접 만나보고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그냥 정우진의 연령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2002년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시리즈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청각장애인 류 역으로 호평 받았고, 2003년 장준환 감독의 불후의 명작(?)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 역을 맡아 충무로를 대표하는 성격파 배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간 선한 이미지를 뒤집는데 성공. 박해일과 더불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로도 표현되는 배우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병구 역을 맡으면서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그래서 영화를 자세히 보면 폭식으로 몸이 불었다 줄었다 오락가락 한다.

2005년 여름에는 공교롭게도 그가 찍은 영화들의 개봉시기가 맞물려 그 시기 박스오피스 1위, 2위, 4위를 점령한 한국영화에 모두 그가 출연하기도 했다. 1위 웰컴 투 동막골, 2위 박수칠 때 떠나라, 4위 친절한 금자씨. 참고로 친절한 금자씨는 납치범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데뷔 이후 해마다 적어도 한편씩은 꾸준히 작품들을 찍어왔고,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에도 출연. 영화배우라는 인상이 강하나 딱히 매체를 가리고 그러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B급 영화적 매력을 지녔다고 평가할 정도로 비주류 캐릭터 연기에 최적화되었다.

한 편, 분명히 동년배 배우들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연기력이지만 이상하게도 상복이 없는 배우다. 《브레인》으로 대상을 타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받은 연기상이 2003년 영평상에서 병구 역으로 받은 남우주연상이었을 정도다. 이후 흥행작이 없던 것도 아닌데 그의 연기가 어느 영화에서도 대부분 호평을 받아왔던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결과. 이정도면 할리우드의 조니 뎁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상복이 없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어차피 상 받으려고 하는 연기가 아니니 별 상관없다고 하지만 팬들은 아쉬울 따름. 고지전 홍보차원으로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에 출연했을 때 2007년 납세자 상 이후로 수상경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영애

태평양화학의 마몽드 CF. 이때 ‘산소 같은 여자’라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받으며 이름을 크게 떨쳤다.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 광고의 메인 모델을 맡게 된 유덕화의 상대역으로 이영애가 캐스팅되어 데뷔했다. 이때부터 남다른 외모로 이름을 알음알음 알리게 된다. 이후 홍콩 스타들 대신 손지창, 김민종, 고현정, 이정재 같은 국내 배우가 초콜릿 모델의 대세가 되면서 유덕화와 함께 했던 투유 초콜릿 모델로서의 존재는 잊혀졌지만, ‘산소 같은 여자’라는 카피를 내세운 마몽드 화장품 CF가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이런저런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을 쌓았는데, <내가 사는 이유>에서의 술집 작부 같은 캐릭터를 맡기도 했고 윤석호 PD가 연출한 단막극 <은비령>이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불꽃>에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의 성공을 발판삼아 영화계에도 진출했는데, 최민수와 함께 출연했던 <인샬라>는 관객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1990년대에 스크린에도 데뷔하는 등 꾸준히 배우로서 얼굴을 비췄으나, 화장품 모델의 이미지가 더 강했는지라 비교적으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드라마에도 꾸준히 출연했으나, 특출난 미모 외에는 연기자로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이 지속되었다.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와 2001년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서부터였다. 이 때부터 슬금슬금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다져가던 중 2003년, MBC 사극 드라마 <대장금>의 주연인 서장금 역을 맡으며 그야말로 절정을 찍었다. <대장금>은 이후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한류 드라마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주인공인 이영애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 배우로서 크게 유명세를 얻게 된다. 이후 2005년에 <친절한 금자씨>로 다시 연기 변신에 성공, 평론의 극찬과 흥행을 이루며 최고의 여배우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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