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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도원결의

2020. 12. 17. 06:52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 소설 삼국지연의는 1회에서 도원결의와 황건적의 난을 다루며 시작한다. 아예 몇몇이 의기투합하는 일 자체를 뜻하는 일종의 관용어(사자성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또한 유비, 관우, 장비가 그랬듯이 의형제를 맺는 일을 뜻하는 관용어로서도 쓰인다.

 


도원결의는 정사 삼국지에는 직접적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유관장 세 명이 서로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정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다. 복숭아나무아래에서 세 명이 맺은 결의.

이 세명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다짐한다.

 

선주(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 촉서 관우전

 

나(관우)는 조공(조조)께서 후히 대우 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좌장군 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 촉서 관우전

 

장비는 자가 익덕이고 탁군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 촉서 장비전

 

지금 한왕(한중왕 유비)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관우)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은 비유컨대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 - 촉서 비시전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의 관계입니다. - 위서 유엽전

 


당대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는지 타국의 인물들도 이 셋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런 기록들을 보고 "저 3명이 실제로 의형제이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 게다가 실제로도 이들이 의형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당대의 역사서에서 숱하게 나온다. 그 증거가 바로 위의 기록들.

흔히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창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삼국지평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 유명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합니다!' 도 이미 삼국지평화에 있었던 대사이다. 물론 나관중이 연의를 쓸 때 삼국지평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일부 대사를 살짝 각색하기는 했다. 즉, 이름을 알 수 없는 삼국지평화의 저자가 지어냈거나 또는 삼국지평화가 만들어지기 전 민간 설화로 전해지고 있던 것을 수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다른 인물들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의형제를 맺는 풍습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고향 출신인 유비와 장비는 몰라도 불분명한 일로 탁군으로 망명한 타향인인데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두 사람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 사람은 출신과 성격에 관계없이 서로 금방 뜻이 통할만큼 잘 맞는 면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반평생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의리를 지켰겠지만.


치밀한 복선, 소설의 장치, 적합한 개연성 등을 따지는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도원결의는 굉장히 뜬금없는 전개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오로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이 장면에 대해 납득하지 못할 이유를 따지자면 끝도 없고, 트집을 걸려고 하면 역시나 끝이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도원결의는 고전소설로서 삼국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떠나 직선적이고 간결하기 덕분에 도원결의에서 보여주는 의리와 우정이 더욱 빛난다. 유비가 그의 뜻을 함께하는 두 아우를 만나는 '우연성' 때문에 삼형제의 '운명적인 관계' 역시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어차피 맺어질 사람들은 맺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삼국지연의의 전체 흐름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과거를 길게 서술할 필요가 없다. 훗날 난세를 헤쳐나가 천하를 다투는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나관중이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간주했을 수도 있다. 삼국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한 삼형제가 대륙을 누비며 그 우정과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장면이지, 이들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당초 난세에는 그 인물의 과거가 어땠느냐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을 것이다.


이는 고전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고전소설인 만큼 현대소설과는 문체와 서술법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담가에 가까운 강사들이 관중을 모아놓고 판을 벌여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이는 과거사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강렬하고 멋진 묘사, 그리고 그들의 주요 행적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고전소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대의를 위해 셋이 함께 떨치고 일어났다' 라며 도입부를 정리하고 바로 쌈박질 장면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몰입감 넘치고 내용도 깔끔한 것이다. 이런 전개가 현대인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

 


어찌보자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원결의 대목을 읽는 현대인들의 반응이 '뭐 이렇게 뜬금없어' 인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이 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는 도원결의 장면 이전에 짧게라도 삼형제가 엮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부 삼국지 판본에서도 이 셋이 어떤 일로 우연히 엮인 후 다시 재회하여 그때부터 의기투합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도원결의의 구성을 꼭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지만, 소설의 분량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기승전결을 부여할 수가 없다.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세 사람이 만나 의형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관장 삼형제가 한말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삼형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발단이며, 분량이 정해진 소설이다보니 "셋이 출발하기 전에 원래부터 이랬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한 배경이야기처럼 서술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의 극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라면 현대 소설에서도 굳이 시시콜콜하게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같이 만나 형제가 되었냐가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된 그들이 어떻게 난세를 헤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맹세를 지켰는지이기 때문이다. 대신 소설 작법은 계속해서 발달해왔으며, 배경이야기에 대해서도 독자가 최대한 납득할 수 있도록 서술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그 때문에 현대에 쓰여지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삼형제의 과거 이야기를 추가하여 독자가 그럴싸하다고 여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작가들이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조금 더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도원결의 장면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그 앞부분에 서술이 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이 의형제가 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한나라 말기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며, 일개 민간 의료사 겸 종교 교주가 휘하 무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한나라 조정이 어떻게 썩어갔으며, 당대 제후들이 어떻게 해서 군벌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다보면, 한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써놓은 후 삼형제가 걸어온 과거를 슬쩍 양념으로 곁들이면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될 것이며, 도원결의 장면만 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역사 교양서적의 수준에 달해 있다. 고전 소설에서는 분량조절과 재미를 위해 디테일한 배경 설명을 과감히 빼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의 삼국지연의 매체에서는 당시 어지러웠던 한나라 시대상에 대해서도 많이 손을 대고 있긴 하다.

 

 


현대 소설에서도 이야기의 발단, 그것도 최초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굳이 복선을 설치하고 철저한 개연성을 확보하지는 않는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완벽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 생략은 필요해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분량과 재미를 위해 일정한 지점 이상을 생략하는 것은 고전소설만의 특징이 아니다. 다만 고전소설에 비해 현대소설의 독자들은 생략된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이를 솜씨 좋게 감추는 소설의 작법 역시 발전한 것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독자를 배려하는 장치가 추가된 것이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대뜸 의형제를 맺기로 하는 것이 충분히 "있을 법" 한 일이었는데, 의식이 변화한 현대에는 이것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독자들이 읽을 때 도원결의를 충분히 "있을 법" 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또 이점에서는 독자의 정서와 관점이 변화한 점 역시 생각해야 한다. 중국 고전 전통에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협객>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상 중 하나였고, 이러한 협객들이 사소한 계기로 뜻을 모아 함께하는 것 역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작물 속에서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던 장면인 것. 하지만 현대인의 기준에서는 이것이 개연성 없는 장면으로 보이는 것.

 

 

 

중요한건 도원결의 이전이 아니라 도원결의 이후 저 유관장 삼형제의 행보다. 삼인방의 험난한 인생경로, 조조와 손권을 비롯한 여러 적들의 수많은 공격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서로를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의기투합하여 난세를 헤쳐나간 그들의 행보 덕분에 도원결의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의 우정을 일컫는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군신과 형제와 친구 사이의 배반이 밥먹듯이 일어났던 후한 말의 난세였기에 그들의 의(義)는 그런 진흙탕 속에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난세이던 당시엔 상관과 양아버지을 죽인 배신의 아이콘도 있었고, 의심이 든다고 자신을 친절히 맞이해주던 옛 친구와 그 일가족을 죽인 군주도 있었으며, 형제끼리 못 싸워서 안달이던 사세삼공의 명문가도 있었고 망해가는 황실을 외면한 채 황제놀이를 하던 황족들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 눈을 신경써야 할 군웅들조차 저랬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이런 험난한 시대에 유관장 삼형제는 난세에 몸을 던진 작은 세력으로 수많은 고비를 겪고 아예 적에게 풍비박산나서 부득이하게 서로 떨어지게 된 일도 여러번 있었고 더 크고 강한 세력으로부터의 유혹도 수차례 있었지만 결국 저 세 명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배반하지 않았다. 정사에서든 연의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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