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is all.
베밴버그의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데인족의 손에서 자란 우트레드는 잉글랜드를 위해서 싸우는 전사가 되어간다. 시즌3까지의 우트레드의 행보는 웨섹스의 왕인 알프레드를 도와 장차 잉글랜드라 불리우는 나라를 건설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웨섹스는 현재의 잉글랜드의 남단에 위치한 잉글랜드의 여러 왕국들 가운데 하나였다. 북쪽에서 내려온 노르만족과 잉글랜드 내의 여러 왕국들 간의 싸움끝에 웨섹스는 잉글랜드를 통일왕조를 세우게 된다.
잉글랜드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색슨족과 노르만족의 중간에 서 있는 우트레드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잉글랜드의 건설이 색슨족과 노르만족의 융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알프레드 왕은 누구인가?
알프레드 대왕은 영국의 역대 왕들 중 유일하게 대왕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잉글랜드라는 국가 및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에도 잉글랜드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앵글로색슨족이 세웠던 칠왕국을 묶어서 잉글랜드라는 정체성을 확립했고, 수준높은 로마문화를 담은 라틴어 문헌들을 고대 영어(앵글로색슨어)로 번역해서 영어의 기초를 세웠다. 특히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 잉글랜드 북부를 완전히 정복하고, 남잉글랜드에 위치한 웨섹스까지 넘보던 바이킹들을 여러 번 패퇴시키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알프레드의 조부(祖父)인 에그버트 왕은 웨섹스 왕국을 브리튼 섬의 패자로 만든 최초의 인물로 일부 지역을 제외한 브리튼 섬 대부분을 자신의 휘하에 복속시켰다. 그러나 8세기 말부터 데인족 바이킹이 침략해 오면서 웨섹스 왕국은 지속적으로 이들에게 시달렸으며 9세기 중반부터는 정규군 수준의 병력으로 쳐들어 와서 브리튼 섬을 약탈했다. 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웨섹스 왕국은 사실상 패자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왕국은 다시 분열되었다.
알프레드 즉위 당시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즉위 초반 그는 바이킹 침략군들에게 연전연패하면서 계속 도망다니기 바빴으며 런던, 캔터베리 등 다수의 요충 지역을 이들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이 위기상황에 그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는데, 도망다니는 중에도 지역의 군소 영주들을 설득하여 공동의 적 바이킹에 대항하자는 공감대를 얻어냈으며 이를 통해 주요 전략지에 요새를 세우고 상비군을 편성했다. 이런 군사적 인프라 확충을 통해 반격에 나선 알프레드는 878년에 드디어 월트셔(Wiltshire) 지역의 에탄던(Ethandun, 현재는 에딩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구트룸(Guthrum)이 이끄는 바이킹 부대를 박살내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는다. 이 승리에 고무된 알프레드는 차례로 바이킹의 점령지를 무너뜨렸으며 886년에는 바이킹의 손아귀에 있던 런던을 탈환하게 된다.
런던 탈환 후 다년간의 전쟁에 지친 웨섹스와 바이킹은 일종의 협약을 맺고 상호 군사행동을 멈추게 되는데, 런던을 포함한 브리튼 남서쪽 및 머시아 서쪽은 웨섹스가 차지하고 머시아 동쪽 및 동앵글리아는 데인족에게 할양하여 일종의 데인인 자치구로 허용하는 협약을 맺었다. 데인족의 자치가 허용되는 구역을 소위 데인로(Danelaw)라고 하는데, 웨섹스에서는 영주를 비롯한 유력자들이 큰 농장(장원)을 소유하고 농민들에게 소작을 시키는 장원제도가 대세였던 반면 데인로의 주축 지역이었던 머시아와 이스트 앵글리아 등에서는 자영농이 대세가 된다.
하지만 이 협약은 항구적인 평화협정이 아나라 일종의 휴전협정이었기 때문에 알프레드 이후에도 바이킹은 계속 웨섹스의 영역을 넘보았으며 웨섹스는 웨섹스대로 바이킹에게 내준 지역을 점령하는데 골몰하게 된다. 알프레드 대왕 생전인 890년에도 바이킹이 웨섹스로 쳐들어와서 무려 4년 동안이나 잉글랜드 전역을 시계 방향으로(템즈 강-웨섹스-머시아-동앵글리아-런던 근교) 돌면서 쫓겨다니기도 했다. 이 때 후계자인 대 에드워드가 등장하면서 군재를 쌓은 것은 덤이었다.
이처럼 알프레드는 비록 데인족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 했지만 바이킹에 휩쓸려 사라질 뻔 했던 앵글로색슨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의 업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전쟁 지휘관일 뿐 아니라 탁월한 행정가기도 했는데, 로마가 몰락한 이후 사실상 이민족 최초로 왕권확립 + 중앙집권 스타일의 통치체제를 마련했다. 바이킹이 계속 침략하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도 왕권을 계속 강화시켜 나갔으며 바이킹과 휴전한 후에는 자신의 지배 영역을 10개 정도의 주로 나누고 각 주에는 각각 세속 권력인 장관과 종교 권력인 주교를 파견하였다. 통상적인 봉건주의 국가에서는 각 지역을 토착 세력에게 맡겨 두고 왕은 이들로부터 형식적인 충성맹세만 받았는데, 알프레드는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고 세금을 걷고 징병을 실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심지어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임명권과 파견권까지 왕이 장악하여 종교 권력도 왕의 손에 넣었다.
9세기라는 혼탁한 시기에 중앙집권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으로, 알프레드 이후 유럽에서 제대로 된 중앙집권 국가가 등장하려면 소위 절대왕정 체제가 시작되는 16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알프레드의 손자 애설스탠은 바이킹을 거의 몰아내고 최초의 잉글랜드 통일왕국을 이룩하면서 할아버지가 개척해 놓은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다만 10세기 후반부터 유틀란트 반도에 덴마크 왕국을 건설한 바이킹의 침략이 심해지면서 이 중앙집권화의 성과가 오랫동안 유지되지는 못했다.
알프레드의 업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는 제도 정비와 더불어 문화와 종교의 부흥에도 힘썼다. 대표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손잡고 각지에 주교를 파견하는 등 가톨릭 신앙의 보급에 힘썼다. 또한 큰 산 하나만 넘어가도 말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지역별 이질성이 강했던 고대 영어의 표준화를 시도했고 기록을 위한 영문법을 정비하였다. 알프레드 이후 웨섹스왕국에서는 기록문화가 정착되어 많은 문헌을 남겼다. 그의 시기에 라틴어로 쓰인 책 다수가 영어(고대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보에티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 등 라틴 저술가들의 저작들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소개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본인 스스로도 자서전을 포함한 몇몇 저술을 남겼으며 그가 직접 쓴 문헌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다. 이 시기에 기록으로 남겨진 문서들은 당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1차 사료인 동시에 고대 영어 및 고대 게르만어 연구에도 대단히 소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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